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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면서도 게으른 사람이 되자
장교에는 4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게으르고 멍청한 자들이다. 이들은 가만히 놓아 두어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둘째, 부지런히 일하면서도 똑똑한 자들이다. 이들은 모든 세부 사항들까지 파악하므로, 훌륭한 참모가 될 것이다.
셋째, 부지런히 일하지만 멍청한 자들이다. 이 자들은 위험한 자들이니 당장 잘라야 한다. 이 자들은 쓸데없는 일거리만 잔뜩 만들어낼 것이다.
마지막으로, 똑똑하면서도 게으른 자들이다. 이 자들이야말로 최고위직에 적합하다.

 위의 게으름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주는 이 '훌륭한' 이야기는, 2차 대전기 최고의 명장 혹은 20세기의 가장 유능한 장군으로도 손꼽히는 독일의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Fritz) Erich von Lewinski Manstein, 1887-1973)가 그의 저서인 '군인의 삶에서 1887-1939'(Aus einem Soldatenleblen 1887-1939)에서 군 장교들에 대해 서술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있는 글이다.

 만슈타인 원수는 필자가 상당히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한데, 그에 대하여는 일단 다음에 포스팅하기로 하고-
Erich von Manstein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 '천재'니 '마스터'니 하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명장이다.


 그 후, 어떤 미국의 경영학자가 만슈타인 원수의 책을 읽고 이 4가지 유형론을 자신의 경영학 서적에 쓴 덕분에 여러 사람들에게 인용되어 오늘날 국내에서도 신문이나 서적에 종종 등장하는 잘 알려진 이야기가 되었는데(경영학의 대부라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도 이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고 한다), 사실 이 말은 만슈타인 원수가 독창적으로 한 말은 아니다.

 일단, 먼저 이 이야기의 뿌리가 어디인지부터 찾아보자면-

 영국의 몽고메리 원수(Bernard Montgomery, 1887-1976)의 자서전에서도 "독일의 한 장군은 장교의 유형을 4가지로 구분하였다.."라는 식으로 이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장교의 4가지 유형론'이 만슈타인 원수의 '원조' 저작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아마 만슈타인 원수가 워낙 유명한데다 그 능력이나 전공이 대단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알려진 것이 아닐까 한다.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과 '승리의 만슈타인'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나기 마련.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가장 먼저 말한 사람은 누구일까? 한겨레 신문에서는 '경제전쟁 시대의 인간형'이라는 기사에서 한스 폰 젝트 상급대장(Hans von Seecht, 1866-1936)을 그 저자로 소개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인 듯하다. Wikipedia에 따르면, 쿠르트 폰 함머슈타인-에쿠오르트 상급대장(Kurt von Hammerstein-Equord, 1878-1943)의 저작이라고 한다.

 함머슈타인-에쿠오르트는 1933년 10월에 쓴 부대지휘론(Truppenführung)에서 똑똑함, 게으름, 부지런함, 멍청함의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장교들을 이에 따라 분류하였다. 함머슈타인-에쿠오르트는 똑똑하지만 게으른 장교는 어떠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을 만큼 자질이 있다며 이들이야말로 최고위직에 적합하다고 하였다. 만슈타인 원수가 말한 4가지 유형론과 거의 같다. 만슈타인 원수(1933년 10월 당시에는 중령, 1933년 12월에 대령이 됨) 역시 당시 독일 육군의 공식 교본이었던 부대지휘론을 당연히 보았을 테니, 여기에서 이 이야기를 보고 자신의 책에 서술한 듯 하다.

 이제 이 똑똑하거나, 멍청하거나, 부지런하거나, 게으른 특징을 가진 장교들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물론 폰 만슈타인과 같이 냉철하고 유능한 지휘관이 정말로 '게으른' 것을 미덕으로 보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으르지만 똑똑한 장교에 대한 부대지휘론의 설명에서처럼, 어떠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산적한 과제들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중요한 것부터 확실히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만의 80/20 법칙 만들기'라는 책에서 저자인 리처드 코치(Richard Koch)는 만슈타인의 이 이야기에 레이건과 카터를 예로 들어, 레이건은 '게을러서' 중요한 몇 가지 사안에만 집중하여 놀라운 성과를 냈지만 카터는 열심히는 했지만 목표가 너무 많아서 참담하게 실패했다고 쓰고 있다. '예병일의 경제노트'에서도 이를 인용하여, 무조건 열심히만 일해서는 항상 바쁘기 때문에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다는 의미이며, 무엇이 진짜 중요한 일인지 핵심적인 일을 찾아내 그것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찾는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지혜'가 덕목이라고 한다.

 키워드만 꼽아 보자면, 여유와 집중이랄까?

 여기까지 읽었다면, 다시 한번 처음으로 돌아가 만슈타인 원수가 했던 4가지 유형의 장교 이야기를 읽어보자. 그리고, 더 말할 필요도 없이-물론 부지런히 능력을 갈고 닦아 똑똑해져야겠지만- 똑똑하면서도 '게으른'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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