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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m 방수 시계인데도 왜 물이 샐까? - 시계의 방수에 대해
 손목시계를 차고서 세수를 하다가 시계 속에 물이 들어가 버린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아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했을 것 같다. 특히, 시계에 틀림없이 [30M WATER RESISTANCE] 라든가, [WATER RESIST] 등의 방수(防水) 표시가 되어있는데도 겨우 세면대에서 세수 잠깐 했기로서니 물이 새어버리는 경우랄까.

 옛날, 필자도 그러한 경험을 했다. 무려 수심 30미터까지 방수가 된다는 표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깐 세수를 했을 뿐인데 시계 창에 물기가 가득한 그 모습이란. 30미터는 커녕 0.3미터도 안되는 물의 깊이인데 물이 다 새어버리다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처음엔 '이거 시계가 불량인가?' 라는 생각까지 했었는데- 바로 사람들이 시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잘못된 상식이 시계의 방수 능력에 관한 것이 아닐까 한다.

 먼저, 방수 시계의 정의는 국제 규격인 ISO 2281에 정의되어 있다. (한국의 KS규격 역시 ISO 2281을 따르고 있다.) 이에 따르면, [수심 1미터 속에서 30분간 그리고 수심 20미터 속에 90초간 두어 침수되지 않을 것]을 방수 시계의 조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물이란 물의 흐름이라든가 기타 압력 조건이 없는 상태의 물을 뜻한다. 예를 들어 가장 찾아보기 쉬운 '30미터 방수' 시계에서 30미터 방수란, 실제 바닷속 30미터에 들어가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물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시험관 속의 안정된 물 30미터가 가지는 수압, 즉 약 3기압 정도의 압력을 견딜 수 있다는 뜻이다(1기압은 대략 물 10m의 압력이다. 수심이 아니라 기압으로 방수 성능을 잰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을 조금만 세게 틀어도 이 정도의 수압은 충분히 가질 것이다. 수도꼭지를 최대한 돌려서 물을 콸콸 쏟아내면 5기압 정도의 수압은 나온다고 하니, 30미터 방수 시계가 방수가 될 리 만무하다.

 일반적인 방수 시계는 흔히 30미터, 50미터, 100미터의 성능 분포를 가지고 있는데-

 30미터 방수 시계(30M/100FEET(ft)/3BAR/3ATM) * 1종 방수시계
 -가장 기본적인 방수 시계의 성능이다. 생활방수 혹은 Splash Resistant라고도 하며, 빗물을 막거나 약하게 흐르는 물에서 손이나 씻을 만한 수준의 방수 성능을 제공한다. 한 마디로 실상 거의 방수가 되지 않으니 물에는 닿지 않게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정도의 있으나 마나한 방수 성능은 거의 모든 시계가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 따로 방수 시계라고 불러주기도 아깝다. 드레스 워치라든가, 비교적 방수를 필요로 하지 않거나 디자인을 중시하는 패션 시계 등이 거의 이 정도의 방수 성능을 가지고 있다.

 50미터 방수 시계(50M/160FEET/5BAR/5ATM) * 2종 방수시계
 -30미터 방수 시계보다는 좀 더 방수 성능이 좋아 간단한 세면은 물론이고 샤워, 혹은 가벼운 수영(수면 위에서의 물놀이랄까) 등을 할 때에도 방수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물줄기를 세게 틀었을 때의 기압이 5기압 정도이니 불안불안하다. 그래도 30미터 짜리보다야 좀 더 안전한 만큼,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약간은 안심하며 사용할 수 있다 하겠다.

 100미터 방수 시계(100M/300FEET/10BAR/10ATM) * 2종 방수시계
 -이쯤 되면 일반적인 경우 안심하고 시계를 착용해도 무방하다. 스노클링 정도도 무난하다. 보통 사람들이 겪게 되는 방수의 문제에서는 자유롭다고 봐도 되는 수준. 수면에서의 수상 스포츠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다이버용 시계가 아니면서도 스포티한 시계들은 보통 수심 100~200m 정도의 방수 성능을 가지는 듯.

 주의할 점은 목욕탕이나 사우나 등은 방수 시계라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계 내외부의 온도차, 습도차, 압력차 등이 심하기 때문.

Seiko, Diver's 200m.
 통상 일반적인 시계의 방수는 이 정도까지 분포되어 있고, 이보다 더 강한 방수 성능을 가진 시계들은 다이버용 시계로 분류된다. 다이버용 시계의 규격은 ISO 6425를 따르고 있다. 이 잠수용 시계들의 경우 방수 표기에도 Diver's 등이 붙는데 일반 방수 시계의 수심 표기가 단순히 수압을 표기하는 것이었다면, Diver's의 수심 표기는 실제 사람이 시계를 차고서 잠수할 수 있는 시계의 방수 수심을 뜻한다. 그리고 다이버용 시계의 경우 다이버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까지 이어질 수 있으므로 안전을 위해 표기된 수심보다 25% 정도는 더 깊은 곳에서 테스트하며 야광 처리와 더불어 염수(鹽水)에도 견딜 수 있게 되어 있다.


 다이버용 100미터/200미터 방수 시계(Diver's 100m/200m 300ft/660ft) * 1종 잠수시계
 -이 단계의 시계들은, 200미터 방수부터는 본격적으로 스쿠버 다이빙이 가능한 방수 시계이다. 일반적인 공기통을 가지고 잠수하는 깊이이므로 Air Diver's ~m로 표기되기도 한다. 표기는 수심 100미터, 200미터 방수라지만 사실 이 방수 시계들을 차고 심도 100미터씩 잠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매우 잘 훈련된 스쿠버 다이버들도 수심 30~40미터 이하로 잠수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이버용 300미터 이상 방수 시계(Diver's 300m/1000ft) * 2종 잠수시계
 -심해에까지 다다를 수 있는 전문가용 잠수 시계이다. 이 시계들을 필요로 할 만큼 깊은 심도에서는 일반적인 공기가 아니라 헬륨 가스 등이 혼합된 수중호흡기를 사용하므로 He. GAS Diver's ~m라는 표현이 붙기도 한다.
 이런 대심도를 잠수할 때에는 시계 안에 헬륨 가스가 지나치게 차게 되어, 수면으로 부상할 때 시계 내부에 찬 가스가 압력차 때문에 팽창하여 시계를 파손시킬 수 있으므로 헬륨 가스 방출 밸브가 마련된 시계들도 있다.
 1000미터/3300피트의 방수 성능을 가진 시계들도 있는데, 그만큼 방수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쯤 되면 시계의 방수 내구성이 인간의 잠수 한계보다 더 깊은 심도에까지 다다르는 셈. 심지어 무려 심도 11,000m의 방수 성능을 가진 시계도 있을 정도다.
Rolex Sea-Dweller , 수심 1200m 테스트

실제 바닷속 1,200m에서의 로렉스 씨드웰러(Rolex Sea-Dweller)

BELL & ROSS, HYDROMAX PROFESSIONAL

무려 수심 11,000m의 방수 성능을 갖춘 벨 앤 로스의 하이드로맥스 프로페셔널(Bell & Ross, Hydromax Professional)

 여기까지, 시계의 방수에 대해 살펴보았다. 시계의 방수 표시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이 포스팅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방수 시계에 대해서 대충 정리된 느낌이다.

 아, 만일 '30M' 방수 시계를 믿고서 용감하게(?) 물 속으로 뛰어들겠다고 생각하셨다면 이젠 시계는 벗어놓고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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