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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 미술관 그리고 <궁정의 시녀들>,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나는 미술관이라는 장소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이다. 아니, 미술관뿐 아니라 '미술'이라는 것, 그것과 친하지 않다고 해야 될까? 어릴 적엔 풍경화 그리기를 좋아하기도 했었지만, 그리고 싶어하는 맑은 하늘 빛을 도화지 속에 옮겨담는 건 내 붓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기에 금방 그만두고 말았다. 원하는 색을 표현해낼 색감도 없었거니와, 스케치도 한심한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날엔 디지털 카메라 덕분에 멋진 풍경을 담아낼 수 있게 되어 풍경화 그리기를 좋아하던 성향은 카메라를 통해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교과서적인 '미술'과는 거리가 멀다. 학창 시절 내게 있어 미술이란 필기는 달달달 외워서 점수를 받고, 실기는 적당히 해서 성적이나 관리하는- 그런 재미없는, 하기 싫은 과목이었다. 대학에 왔더니 미술이 교양필수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 덕(?)에 당연하게도 난 우리나라에서 미술관이라는 곳에 가 본 기억이 없다. 아, 들어가지는 않고 그 앞을 지나가기만 한 서울대 미술관은 예외로 하자- 유럽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테이트 갤러리(Tate Gallery)는 물론, 심지어 그 유명한 프랑스의 오르셰 미술관(Musee d'Orsay)까지- 난 가보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미술관을 안 갔는데, 단순히 유럽이라고 해서, 여행객들이 많이 가는 곳, 유명한 곳이라고 해서 갈 생각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프라도 미술관 앞의 벨라스케스 동상

 하지만 내가 딱 한 군데, 미술관을 꼭 가보겠다고 벼르고 있던 곳이 있었으니 바로 이 포스팅에서 이야기할 스페인 국립 프라도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이다.

 마드리드엔 달리 볼 게 없어서 미술관을 가야 했던 것도 아니고, 그 날 무슨 행사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프라도 미술관을 찾아간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바로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Rodríguez de Silva Velázquez, 1599-1660)의 그 유명한 대작, <궁정의 시녀들(Las Meninas, 영어로는 The Maids of Honour)>이 그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프라도 미술관에 대해 쓰자면, 벨라스케스나 고야(Francisco Goya), 엘 그레코(El Greco), 루벤스(P. P. Rubens), 보슈(H. Bosch) 등의 특급 컬렉션을 필두로 수천 점이 넘는 그림과 조각 등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미술관이다. 흔히 유럽 3대 미술관의 하나라고들 이야기하는 이 미술관은 1785년 카를로스 3세 때 자연과학 박물관으로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원래는 목초지가 있던 자리라 프라도(스페인 어로 Prado는 목초지를 뜻한다)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나폴레옹 전쟁(이베리아 반도 전쟁)의 와중에는 마드리드를 점령한 프랑스 군의 사령부 건물로 쓰이는 등 우여곡절 끝에 종전 후인 1819년, 페르난도 7세 때에 비로소 왕립 프라도 미술관이 되었다. 그리고 반세기 후인 1868년 혁명이 일어나 이사벨라 2세가 쫓겨난 후, 국유화되어 국립 프라도 미술관으로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프라도 미술관


 그리고 이 프라도 미술관에서도 가장 먼저 손꼽히는 작품이 바로 나로 하여금 이 곳을 찾아가게 한 <궁정의 시녀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Las Meninas
Diego Velázquez, 1656년
캔버스에 유화
318 × 276 cm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언제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미술 교과서에서 이 그림을 본 순간 한 눈에 매료되어버렸다. 경탄 혹은 경외, 딱 맞는 수식어가 떠오르진 않지만 '대단한' 느낌이었다. 더구나 17세기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다. 단순히 아주 사실적인 그림이어서가 아니었다. 작품의 구도나 작품 속 인물들은 신비할 정도로 내게 다가왔다.

그림 속의 디에고 벨라스케스

디에고 벨라스케스

 가장 작은 인물인 마르가리타 공주(Margarita Teresa)에게 화면의 중심이 딱 맞춰져 있으면서 그림 속의 인물들의 시선은 마치 그림 밖의 나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오묘하게 그려낸 빛까지- 마치 내가 이 에스파냐의 궁정에 서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왕녀의 위에 있는 액자 속의 두 인물은 신비감을 주었는데, 나중에서야 그 인물들은 거울 속에 비친 국왕 부부였으며, 또한 그림 왼쪽의 화가는 다름아닌 벨라스케스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한번 얼마나 대단하던지.

 그제서야 등장 인물들의 행동을 알 수 있었다. 아니, 그림을 알 수 있었달까. 국왕 부부의 시선에서 바라본 마치 한 장의 순간 사진(snapshot)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언젠가는 꼭 이 작품을 실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몇 년 뒤 마침내 나는 마드리드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경탄스러운 작품을 직접 두 눈으로 본다는 설레임에 발걸음도 가볍게- 사실은 태양빛이 내리쬐는 아주 더운 날씨였지만- 프라도 미술관으로 갔던 것이다.

 프라도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당연히 이 그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실제로 <Las Meninas>를 직접 보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크다'는 것이었다. 318 x 276 cm이라는 크기가 실감났다. 먼저는 그 생각보다 훨씬 더 큰 크기에 압도당했고, 다음으론 아주 가까이에서 그림을 보니 그제서야 붓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작게 축소된 사진으로만 보았을 때에는 정말 사진처럼 깨끗했었는데, 마치 컴퓨터에서 그림을 확대하면 픽셀이 보이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리고선 마치 내가 그림 속의 인물이라도 되는 양, 그림에서 적당히 물러서서 공주를 바라 보았다. 역시나 벨라스케스의 그 그림이다. 새삼 또 감탄했다.

 마치 내가 그림 속 스페인 왕궁에 있는 듯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데, 시끌벅적한 소리에 생각의 선율이 흐트러졌다. 아니나다를까 사람이 무척 많았다. 다행히 내가 갓 도착했을 때가 관람객이 좀 없는 편이었나보다. 다들 그림을 감상하거나 기념 사진을 찍느라 바빠보였는데, 나도 그 틈에 어느 관광객에게 어설픈 영어로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다. 덕분에 사진을 찍긴 찍었는데- 양키 센스란! 구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뭐, 이 그림을 찍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지만.

  마지막으로, 직접 찍은 <Las Maninas>를 올려 본다. 당시 사용했던 카메라가 똑딱이라 제대로 나오진 않았지만, 가까이에서 찍은 덕분에 사진 상에서 표면의 질감을 약간 느낄 수 있다.

 다시 한번, 이 그림에 감탄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Las Meninas

* 사진 출처(위에서부터)
Flickr Martin Hapl, Ruth L, Wikipedia Montrealais, Museo del Prado, Wikipedia Las Meni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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