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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전면 개정판을 만나다
네이버 책 링크 : 『이기적 유전자』 전면 개정판 - 홍영남, 이상임 역, 을유문화사, 2010.

2006년에 을유문화사에서 펴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30주년 기념판) 는 그동안 우리말 번역이 아쉽기로 유명했다. 문장이 읽기 어려운 것은 물론, 오역이 상당하여 '발로 번역했다'는 혹평을 여러 게시판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과학을 넘어선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는 출판사의 홍보 문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책치고는 안타까운 번역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필력이 뛰어나기로 이름난 도킨스의 책이고 보면 더욱 그랬다. 그래도 워낙에 명저다 보니 베스트셀러 목록의 한 자리를 꾸준히 지키고 있었는데, 드디어 '전면 개정판'이 8월 10일에 출간되었다.

이미 매우 잘 알려진 책이니만큼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소개는 생략하고 '전면 개정판'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어 보고자 한다.

출판사의 책 소개에 따르면, 이번 전면 개정판의 번역에는 2006년 판을 번역하였던 서울대 생명과학부의 홍영남 교수에 더하여 새로이 이상임 박사가 참여하여 내용의 정확성과 가독성을 높이고, 문장을 다듬고 상세한 주석을 덧붙였다고 한다. 

책 표지부터 예쁘다. 훨씬 보기 좋다. 예전 표지의 색감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말이다. 덕분에 여러모로 기대감을 가지고 전면 개정판을 펴 보았다. 매끈한 하얀 종이의 촉감이 종이의 질도 좋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역시 번역일 것이다. 책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다 읽진 못했지만, 여러모로 손질이 가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에 달라진 문장을 몇 군데 들어 본다.

- 학문상의 흥미는 별문제라 하더라도 이 주제가 인간에게 중요함은 더할 나위가 없다. 그것은 우리의 사회생활의 모든 면, 즉 사랑과 미움, 싸움과 협력, 주거나 훔치는 것, 탐욕과 관계함에 모두 관계된다. (2006, 41p.)
- 학문상의 흥미는 차치하고라도 이 주제가 인간에게 중요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주제는 우리 사회생활의 모든 면, 즉 사랑과 미움, 싸움과 협력, 주는 것과 훔치는 것, 탐욕과 관대함 등에 모두 관련된다. (2010, 39p.)

- 신의 밈의 생존가에 대한 위의 설명은 논점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해 주는 동료가 있었다. 최종적으로 그들은 항상 정해 놓고 '생물학적 이점'으로 되돌아오려고 한다. (2006, 337p.)
- 내 동료 몇몇은 신이라는 밈의 생존 가치에 대한 이러한 설명이 논점을 회피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해 주었다. 최종적으로 이들은 항상 '생물학적 이점'으로 되돌아오려고 한다. (2010, 324p.)

-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실제적으로 중요하지만, 필연이라 하기에는 이론상 불충분한 사실을 하나 추가해 두자. (중략) 그리고 표현형 효과의 결과는 세계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 그 동일 개체에 응결해 왔다. (중략) 우주의 어떤 장소이든 생명이 발생하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유일한 실체는 불멸의 자기 복제자뿐이다. (2006, 445p.)
- 우연이라기에는 실제적으로 너무 중요하지만, 필연이라 하기에는 이론적으로 불충분한 사실을 하나 추가해 두자. (중략) 그리고 이렇게 뭉쳐진 자기 복제자가 표현형에 초래하는 결과는 세상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 그 개체에 응집되어 있다. (중략) 우주의 어떤 장소든 생명이 나타나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유일한 실체는 불멸의 자기 복제자뿐이다. (2010, 426-427p.)

번역자가 같은 만큼 완전히 새로운 번역은 아니지만 전면 개정판이라 불리기엔 손색이 없는 것 같다. 위의 문장들만 놓고 보더라도 예전보단 훨씬 읽기 편하다. 

오역도 많이 고쳐진 것으로 보인다. 이덕하 님이 쓰신 2006년 판의 숱한 오역을 지적한 Scieng의 게시물이 있는데, 거의 한 페이지에 하나씩 오역이 있었을 정도로 문제가 심했음을 알 수 있다. 위 게시물에서 지적된 사항 33개(6장에서만!)를 모두 대조해보지는 못했고, 앞부분 15개 정도만 이번 전면 개정판과 맞추어 보았다. 놀랍게도 오역된 것들이 꽤 많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대략 80% 정도는 고쳐진 듯 하다. 특히 15개의 지적 사항 중에서, 내용을 잘못 전달했던 중대한 오류들은 거의 모두 고쳐진 것 같고, 다만 단어를 임의로 생략하고 번역했던 문제는 조금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 초록색 수염에 대한 호기심은 프리지어의 냄새를 맡는 능력이 없다는 것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2006, 174p.)
- 녹색 수염에 대한 호감은 프리지어 향기를 맡지 못하는 형질과도 연관될 수 있다. (2010, 168p.)

- 1964년의 그의 두 논문은 지금까지 발표된 사회적 동물 행동학의 문헌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정된다. (2006, 175p.)
- 1964년 발표된 그의 두 논문은 지금까지의 사회성 동물 행동학 문헌 중 가장 중요한 것인데, (2010, 169p.)

- 어떠한 적극적 행동을 하더라도 다른 일을 하는데는 시간과 에너지의 소비가 있음을 기억하라. (2006, 185p.)
- 어떠한 적극적 행동을 하더라도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며, 그 시간과 에너지는 다른 일을 하는 데 쓰일 수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2010, 178p.)

뜻을 잘못 (심지어 반대로) 전달하는 오역이야말로 가장 중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상당히 개선된 이번 전면 개정판은 뒤늦게나마 비로소 제대로 된 『이기적 유전자』를 읽게 되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기대도 금물이다. 개정판은 개정판일 뿐이다. 즉, 영어 원서를 처음부터 새롭게 번역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번역을 다듬고 살을 붙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번역자가 여전히 홍영남 교수로 똑같고, 박사 한 분이 더 참여한 것임을 알았을 때 조금 실망하기도 했다.) 

다시금 예를 하나 들어 보자면, 2006년 판의 첫 문장은 "어떤 행성에서 지적 생물이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생물이 자기의 존재 이유를 처음으로 알아냈을 때이다."였는데, 이번 전면 개정판에선 "~때이다."가 "~때다."로 딱 한 글자 바뀌는 데 그쳤다.[각주:1] 난 저런 영어 어순의 우리말 문장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각주:2] '어느 행성의 지적 생명체는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처음으로 알아냈을 때, 비로소 성숙한다. (혹은 성년을 맞이한다.)' 라면 어떨까? 아니, 그렇게 문장을 새로 쓰지 않더라도 '말할 수 있는 것은' 정도는 '말할 수 있을 때는' 으로 고쳤으면 어땠을까? 

전면 개정판이라지만 (너무 많은 기대를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여전히 아쉬움을 다 달랠 수는 없는 듯 하다. 사실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수려한 도킨스의 글을 느끼기엔 번역본으로는 부족함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여튼, 이번 전면 개정판이 출판사의 설명처럼 내용의 정확성과 가독성을 모두 높였다는 점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 전면 개정판을 이야기함에 있어 빠트릴 수 없는 것은 바로 보주(補註)가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원서 30주년 기념판에서는 초판에 없던 방대한 분량의 보주가 본문 뒤에 추가되었는데, 이것이 2006년의 번역본에는 빠진 채로 출간된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 전면 개정판에서는 그 90페이지에 달하는 보주가 추가되으니 이제서야 《이기적 유전자》가 비로소 완역된 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으로 글을 맺으며, 그동안 『이기적 유전자』의 번역이 여러모로 아쉬웠음이 이 반가운 '완역' 전면 개정판을 통해 제법 해소되기를 기대해 본다.

덧글) 사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은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기 좋다. 그래서인지 리처드 도킨스 본인도 이 책을 쓴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같은 제목을 쓸 것이냐는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의 질문에 '이기적 유전자-이타적 개체'나 '불멸의 유전자'는 어땠을까하는 말을 했다. (「다윈은 미래다 - 진화론 논쟁의 핵, 리처드 도킨스」, 한국일보, 2009년 5월 20일.)
  1. 원문은 "Intelligent life on a planet comes of age when it first works out the reason for its own existence." 이다. R. Dawkins, The selfish gene,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1p. [본문으로]
  2. 우리와 어순이 같은 일본어에서는 이 문장을 어떻게 번역했나 싶어 검색을 해 봤는데 확실한 출전은 알 수 없었으나 웹 검색 결과, [ある惑星上で知的な生物が成熟したといえるのは、その生物が自己の存在理由をはじめてみいだしたときである。]라는 문장이 다수 보였다. 직역하자면, [어느 행성 위에서 지적인 생물이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생물이 자기의 존재 이유를 처음으로 찾아냈을 때이다.] 일 것이다. 어? [본문으로]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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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게 말이다 ㅋㅋ 제목만 보면 오해하기 딱 좋지 실제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이 매우 많기도 하고 (그러잖아도 도킨스 하면 만들어진 신의 저자로도 유명하니 이런저런 왜곡된 이미지가 돌아다니기 좋지)

      여튼 니가 말한 책은 설명을 찾아보니 참으로 훌륭한 책이로군 나도 그런 체험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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