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324 TOTAL 2,370,905
다독, 다작, 다상량에 대하여
내가 글을 못 쓰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 쓰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왜냐면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글을 쓰려고 하면 막막함이 물밀듯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쩌다보니 '글쓰기 노하우'에 관한 글을 하나 쓸 일이 생겨 새삼 글쓰기를 잘 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글을 잘 쓰는 방법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것, 또 가장 흔히 거론되는 것은 구양수(歐陽修)가 말하였던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삼다(三多)는 그가 태어난 지 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글쓰기의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생각되고 있으니, 새삼 참 훌륭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저 뭐든지 많이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많이 읽더라도 잘 씌어진 좋은 글을 읽고, 많이 생각하더라도 객관적, 비판적으로 생각하며, 많이 쓰더라도 세심히 고쳐 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작하기에 앞서 다독과 다상량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다독하고, 다작하며, 다상량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물론 충분이야 하겠지만, 더욱 효과적인 글쓰기의 지름길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글이란 언어를 통해 머릿속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어라는 매개체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것을 더욱 높은 수준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가 이런 내 생각에 길잡이가 되어줄 만한 책을 찾게 되었다.

그저 수굿하고 다독 다작 다상량하면 그만이라고 하던 시대도 있었다. 지금도 생이지지하는 천재라면 오히려 삼다의 방법까지도 필요치 않다. 그러나 배워야 하는 일반에게 있어서는, 더욱 심리나 행동이나 모든 표현이 기술화하는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어느 정도의 과학적인 견해와 이론, 즉 작법이 천재에 접근하는 유일한 방도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태준, 『문장강화』, 필맥, 2008, 17p.

위의 인용문은 반세기도 더 전에 씌어진 글이지만, 지금도 꾸준히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추천되는 책, 이태준(1904~?)의 『문장강화』의 한 부분이다. (출판사에서 붙인 문구를 그대로 인용하자면) 이 책에는 글을 쓰려는 사람의 태도에서부터 낱말의 선택, 문장의 구성, 글을 쓸 때 주의할 점, 글맛을 내는 법, 글의 목적에 따른 문체의 선택, 퇴고의 요령 등 글쓰기와 관련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다독하고 다상량한 후, 이 책을 읽고 어느 정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다작하지 않고도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앞서 말했던 것처럼, 다독하고 다상량하더라도 좋은 글을 가려 읽고, 논리적으로 생각해야겠지만. (그리고 이 책과 비슷한 내용의 책도 더러 있으니, 그걸 보더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괜찮아 보였던 책을 하나만 꼽아 보자면, 윤호병 저 『효과적인 글쓰기 : 이론과 실제』(국학자료원, 2008)을 들 수 있겠다.)
7  Comments
  • 비밀댓글입니다
    • 본문과 무관한 댓글은 방명록에 남겨주셨으면 좋았을텐데, 어쨌건 여기에 답글을 달아 드려야 보실 수 있으시겠죠. ^^

      답변을 드리자면- 글쎄요. 일단 제 프로그래밍 실력이 괜찮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전공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전문적인 커리큘럼에 따라 교육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책을 본 것이라곤 어렸을 때 Basic의 기초, MS-DOS 3.1 매뉴얼, 그리고 안철수 선생님이 쓰신 컴퓨터 바이러스의 개념에 관한 책 정도의 몇 권이 전부입니다. 다행히 그 때 어떻게 코딩을 하면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한다는 걸 조금 이해한 덕분인지, 나중에 다른 언어로 만들어진 소스를 봐도 무슨 말인지 알아보기가 쉽더라고요.

      굳이 제가 '공부'한 방법을 들자면.. 모르는 것이 있으면 검색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특히 구글 검색을 통한 해외 사이트 자료) 질문/답변, 소스 같은 것들을 보고 필요한 것을 취사선택해 제가 만들 프로그램에 적용하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짜고 있습니다. 정 답답할 때에는 제가 질문글을 작성해 올릴 때도 있습니다만, 어지간하면 해외 사이트 검색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전문적인 프로그래밍 공부는 하지 않았으니 코딩 실력도 별로이며, 또 이론적 배경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컴퓨터공학과 분들이 전공하시는 과목은 강의계획서만 보아도 정말 ㅎㄷㄷ하더군요.)

      저야 뭐 이공계 전공자도 아니고(제 전공은 경영학과입니다.) 간단한 취미 정도로만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으니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굳이 더 깊게 제대로 공부해 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여튼, 한 마디로 요악하자면 공부 방법은 예제를 통한 학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스스로의 재미와 호기심 때문에 프로그래밍을 이만큼이나마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정도로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 생각에는, 컴퓨터를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 보시면서, 재미를 붙이신다면 앞으로 전공하시는 공부가 더 잘 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언가 동기 부여가 되는 게 아무래도 중요하니까요.
  • 비밀댓글입니다
    • 굳이 그 책을 찾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 책은 제 기억엔 1990년대 초에 나왔던 책입니다. 지금 보면 기본 상식 수준의 내용인 책이기도 하죠. 제가 그 책을 예로 들었던 건, 이렇게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구나 하며 호기심을 기를 수 있었던 계기였기 때문에 써 본 것입니다. (단순한 BAT 파일만으로도 악성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든가 하는 재미난 사례들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티스토리는 스킨을 사용자가 만들 수도 있어서, 꼭 방명록 링크가 위에 있지만은 않습니다. 제 블로그 스킨도 제가 만든 것이고요. (뼈대는 다른 분이 만든 스킨을 가져와 수정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블로그마다 공통된 양식이 없으니 버튼의 위치가 제각각이긴 합니다. ^^;
  • hi~
    구양수(歐陽修) 할아버지는 다독다작다상량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다문다독다상량(多聞多讀多商量)이라고 했죠.
    [출처 한자성어.고사명언구사전, 조기형, 2011, 이담북스]

    어떻게 하여 이 말이 우리나라에서 변질되었는지는 잘 모르나, 다독다작다상량 또한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남다르게 있다고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제 생각에도 글쓴이 분이 추측하신대로 다작은 좋은 글을 쓰는 필수조건은 아닌듯 합니다.
    • 워낙에 흔하게 많이 듣던 관용구라 소스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지적 고맙습니다.

      말 나온 김에 좀 더 확실한 소스를 알고자, 구글 중국어 검색에서 구양수의 위문삼다를 찾아보니, “三多”,即看多、做多、商量多이라 하여 다X 어쩌고를 직접 쓴 게 아니라, 구양수는 간다, 주다, 상량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동지를 지적하고 있는 국내 인터넷 글들도 몇 개 검색이 됩니다.)

      이것이 그 뜻을 비추어 보면 간이라는 것은 본다는 뜻이고 곧 다독으로 이어지며, 주라는 것은 짓다는 것이니 다작으로 이어지며, 상량다라는 것은 지을 글을 많이 생각하라는 것인지, 지은 글을 (퇴고를 위해) 많이 생각하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저 원문 구절이 변해서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 ㅎㅎ
    한국과 중국에서 같은 한자어를 쓰더라도 간혹 세세한 뜻이 다르게 쓰이는데 재밌게도 이 경우가 그렇네요. 商量은 중국어에서 서로 상의하다, 의견을 묻고 토론하다 라는 뜻으로, 상호간에 생각을 나눈다는 뉘앙스가 아주 큽니다.

    그런데 한국어에서 상량이라 하면 (홀로)깊이 생각하다 정도로 풀이가 되니, 구양수가 의미했던 바가 중국어에서 사용되는 상량의 뜻일 거라 추측한다면 글을 잘 쓰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은 단순히 혼자 끙끙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생각을 묻고 조언을 구하는 것 정도? 가 될 듯 싶습니다. 생각할 수록 흥미롭네요.

    스누타임 이번 학기도 잘쓰겠습니당 ^-^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