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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미술품 진위 감정의 비밀) - 1,000원권 뒷면 그림은 가짜?
「진상 - 미술품 진위 감정의 비밀」은 국내 제1호 미술품 감정 전문학자라는 이동천 박사(이하 인물 존칭 생략)가 국내의 대표적인 미술 작품 약 5백여 점을 감정한 결과를 묶은 책으로, 처음 들으면 충격적일 수 있는 내용들이 씌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익숙한 것들만 꼽아 보아도, 1,000원권 뒷면을 장식하고 있는 정선의 <계상정거도>, 김홍도의 대표작인 단원풍속화첩의 25개 그림 중 무려 19개, 그 밖에도 신윤복의 그림이나 김정희의 글씨 등, 수많은 보물급 미술품들이 위작이라는 것이다.

2008년 7월에 이동천 박사가 서울대학교 멀티미디어동(83동)에서 계상정거도가 왜 위작인지에 대해 강연회를 연 적이 있었는데, 그 무렵에 근처를 지나가며 현수막이 붙어있던 걸 보았던 기억이 난다. 굳이 그런 강연회를 갈 정도로 미술사나 미술품에 관심이 있진 않아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지난 학기에 한국미술사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 위작 논란에 관한 내용을 듣고 보니, 호기심이 생겨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 그 때 이동천 박사의 강연회는 VOD로 제공되어 인터넷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링크 : 천원권 뒷면의 정선 그림 <계상정거도> (보물585호) 왜 가짜인가,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제공)
* 이 강연회의 내용을 글로 정리한 기사는 다음과 같다. (링크 : 이동천 박사 <계상정거도>는 명백한 위작, 연합뉴스) 

 책 값이 10만원이 넘는 화려한 책인데, 모든 페이지가 빳빳한 고급 종이에 풀 컬러로 인쇄되어 있으며, 옆면은 금박으로 칠해져 있으며 표지까지 (위 사진에서처럼) 무게감을 더해주니 책 값이 왜 비싼지 이해가 간다. 무료로 이런 책을 빌려 볼 수 있는 학교 도서관에 감사할 따름이다.

겸재 정선이 그렸다고 하는 계상정거도

겸재 정선이 그렸다고 하는 계상정거도


 굳이 이 책을 공부하듯 시간을 내어서 자세히 읽어본 것은 아니고, 짧은 시간에 간단히 아는 작품 위주로만 훑어본 정도이지만, 이 책의 몇몇 부분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전체적인 책의 구성은 작품을 읽고, 알고, 감정한다는 3단계 학습법에서부터 위조 작품의 진위유형 분류법, 위작 임상강의로 이루어져 있고, 중간 중간에 중국의 미술 위조에 관한 속어나 중국에서의 서화 위조 방법과 감정 교육 방법 등이 함께 소개되어 있다.

 위작을 진작이라 오정한 미술사가들에 대한 비판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는데,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감정하면서 이동천은 특히 유홍준의 안목을 비판하고 있는 대목이 꽤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태호 교수는 물론 안휘준 교수같은 저명한 학자에 대한 비판도 나타나 있다.

 유홍준은 '완당이 좋은 종이를 얼마나 좋아했고, 중국제 화선지를 얼마나 애용했는지는 그의 <연식첩>이라는 작품만을 보아도 알 수 있다.'라고 썼으나[각주:1], 이동천에 따르면 <연식첩>에 쓰인 종이는 중국에서 20세기 초에 제작한 호피선지이므로, 이 작품은 위작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본문 p. 28). 그 외에도 영해타운첩과 같이 유홍준이 진품이라 찬사를 한 것을 이동천은 위작이라 감정하였다(본문 p. 64). (유홍준은 이동천의 주장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센세이셔널한 주장'이라 일축했다.[각주:2])

 안휘준이 왕희지의 행서체를 연상시키는 제첨의 몽유도원도라는 발군의 글씨는 안평대군의 글씨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한[각주:3] 것에 대해서 이동천은, 몽유도원도의 제첨 글씨가 당송의 금초서이며, 박팽년이나 이현로의 글을 통해 볼 때 안평대군이 원래 의도했던 제목은 <몽도원도>이므로 (이렇게 읽는 쪽이 안평대군이 1450년에 쓴 제화시에 잘 맞는다고 한다), 몽유도원도의 제첨은 안평대군의 글씨도 아니고, 글귀 역시 그가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후대의 소장자가
멋대로 붙여넣은 것이라 주장한다. (본문 p. 80-84)

 또, 이동천은 익숙한 작품들에 대한 충격적(?)인 감정 결과를 계속해서 내놓는다. 정선의 계상정거도가 임본 위작이라고 함은 물론(본문 p. 136), 김홍도의 단원풍속화첩은 진작과 위작이 마구 섞인(우협설본 진위혼작) 것이며 <기와 이기>나 <주막>, <논갈이>, <벼타작>, <빨래터> 등, 단원풍속화첩의 25개 그림 중 19개가 (모본 위작과 위작 포함) 위작이라는 것이다. (본문 p. 276-288) 개인적으로는 <춤추는 아이(무동)>도 가짜라고 생각되는데- 어느 국악을 전공하는 학우가 수업 시간에 인상적인 실험(?) 결과를 발표한 것을 보니, 악기의 모양이 실제와 틀릴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악기를 연주할 수 없는 자세로 몇몇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음악에도 꽤 조예가 있던 김홍도가 실수를 했다고만 볼 수 있을까- 어쨌거나 이동천은 이 작품은 (필치를 통해 보건대) 진작으로 분류하였다. (본문 p. 276)

진상: 미술품 진위 감정의 비밀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지은이 이동천 (동아일보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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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이 책의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문구가 씌어져 있다. "내가 가짜라고 했기 때문에 진짜가 하루아침에 가짜가 된 게 아니다. 그것은 원래부터 가짜였다. 이것이 진상이다!" (본문 p. 533) 이동천 박사의 주장에는 미술품 감정에 인생을 건 어떤 고집과 안목이 느껴진다. 물론 그의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그가 중국에서 미술품 감정을 배웠기 때문에, 중국의 안목으로 우리나라의 미술품을 재려 한다는 비판이 크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 옳든 그르든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그의 말을 무시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 그의 주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과학적인 논의를 해야 하는 것이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한다.

* 그 외 참고 링크
네이버 책 - 진상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4578741
문화계의 C.S.I, 국내 최초 감정학박사 이동천 인터뷰 (인터뷰365)
화제의 책 <진상> 펴낸 고미술 감정가 이동천 (신동아)
(두 인터뷰 모두 제법 분량이 있다. 이 글보다는 훨씬 재미가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라면 위의 인터뷰를 읽어보시는 것도 괜찮겠다.)
  1. 유홍준, 완당평전 2, 학고재, 2002, pp. 441-442. [본문으로]
  2. 한국일보, 2008년 5월 20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8&aid=0001955873 [본문으로]
  3. 안휘준, 이병한, 몽유도원도, 예경출판사, 1995, pp. 7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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