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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발키리>에 대한 아쉬움

며칠 전 개봉한 <작전명 발키리(원제: Valkyrie)>는 톰 크루즈(Tom Cruise) 주연에 브라이언 싱어(Brian Singer) 감독이라는 조합에, 개봉을 앞두고 이루어진 톰 크루즈의 내한 이벤트까지 더해져 세간의 조명을 받고 있다.

물론, 필자와 같이 2차 세계 대전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원래 2008년 여름에 개봉 계획이 있었던 만큼 (개봉일을 표시한 한글 예고편이 공개되기도 했었다) 예전부터 개봉을 기다려 왔을런지도 모른다.

사실 소재나 내용이 그리 관객들, 특히 우리나라 영화 시장에서, 인기를 끌 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어 관람객이 별로 없으리라 생각하였는데, 개봉일 조조였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는' 자리가 차 있어 톰 크루즈 효과[각주:1]가 있는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어쨌건, 이 영화는 잘 알려진 것처럼 실재했던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 이하의 본문에서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고편에서는 사막에서의 전투 씬이 등장하는 등- 뭔가 스펙타클한 전쟁 영화가 아닐까 하는 오해를 사게끔 하기도 하는데, 그런 전투 씬은 딱 예고편에 나오는 그 장면 뿐이다. '볼거리'라곤 독일 군복이나 하켄크로이츠(Hakenkreuz, 나치 십자가)들이 전부가 아닐까 싶을 정도인데. 아무튼, 이 영화는 스토리의 긴장감으로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스릴러물이다. 또한 마치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준다.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는 역사적 사실을 영화로 풀어내는 것이므로, 즉 관객들이 '톰 크루즈(폰 슈타우펜베르크von Stauffenberg[각주:2] 대령 역)는 실패하고 히틀러는 죽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긴장감 있게 영화의 줄거리에 몰입할 수 있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그냥 그저 그런 평범한 '평작'이라는 생각이다. 10점 만점에 6점 정도랄까? 솔직히 말하자면, 필자의 경우에는 그다지 긴장감이 들지 않았는데 이것은 필자가 같은 소재의 독일 영화 <슈타우펜베르크Stauffenberg>(2004)를 이미 보았을 뿐더러, 1944년 7월 20일의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의 전개 과정에 대해서도 이미 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 같고- 필자가 그러한 사전 지식이 없었다 하더라도 이 영화를 최소한 '재미없다'라고 느꼈을 것 같긴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면 평작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극적 장치들이나, 소재와 이야기 자체가 주는 긴장감은 일단 존재하고, 그것들은 관객에게 긴장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니.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역을 맡은 톰 크루즈의 연기는 아쉬운 면이 있다. 물론 톰 크루즈같은 검증된 톱 스타가 연기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지만, 폰 슈타우펜베르크라는 인물을 제대로 투영하진 못했다는 생각이다. (따지자면 감독과 각본[각주:3]의 탓이라고 보아야할 것 같지만) 왜 그가 히틀러를 암살하고자 하는지에 대해서는 단순히 영화 시작 부분의 나레이션에서 언급하는 정도가 전부이다.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백작(Graf)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귀족이자, 이전까진 히틀러와 나치의 민족주의에 어느 정도 동감하고 있었던 인물이며, 또한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군인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극 중에서 보여진 폰 슈타우펜베르크의 모습은 너무나도 평면적이었다. 왜 히틀러를 죽여야 하는가? 그냥 '히틀러'이기 때문에? 또, 폰 슈타우펜베르크가 히틀러를 암살하고 이루고자 했던 독일이란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저 히틀러만 없어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여기에선 헐리우드와 유대인 감독의 시각이 개입되지 않았다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左), 톰 크루즈(右). 옆 모습이 닮았다는 이유로 톰 크루즈가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UA.

그런 점에서 보자면, <작전명 발키리>는 다큐멘터리처럼 이것저것 역사적 사실들을 잘 안배해놓은 것 같지만, 실상 바로 그 역사적 사실이라는 부분에서 놓치거나 혹은 생략한 것들이 많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이 영화는 진짜 다큐멘터리는 아닌 만큼 극적 효과를 위해서 그렇게 된 것이겠지만 너무 단순해져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폰 슈타우펜베르크가 아무리 영화의 주인공이라지만, 너무 그 주인공에게 무게추가 쏠려 있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을 띄우기(?) 위해 다른 등장인물들을 낮춘- 예를 들면 펠기벨(E. Fellgiebel)에 대한 실제와는 다른 묘사라든가- 것은 물론이다. 사실 반전이랄 게 그다지 없는 소재이고 보면, 그런 극적 장치들이 어쩔 수 없이 필요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러다보니 상술한 것처럼 오히려 너무 단순해져 버렸다는 느낌이다.

폰 슈타우펜베르크 등이 처형당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들도 충분히 좀 더 여운이 남는 장면으로 만들 수 있었을텐데, 너무 순식간에 지나간 감이 있다. 대령이 처형당하기 전에 외쳤다는 "우리의 신성한 독일 만세! Es lebe unser heiliges Deutschland!" 같은 말을 제대로 살린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 직후에 나오는 반란자들이 갈고리에 교수형을 당하는 장면은 역사적 고증에 부합하는 것이지만, 차라리 그런 장면들 대신 폰 슈타우펜베르크의 최후에 좀 더 신경썼더라면- 어차피 주인공을 왕창 밀어주고 있는 바에야-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 대한 평론은 이쯤하고,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만든 영화이니만큼 역사적 사실과 비교해 몇 가지 장면들을 언급해볼까 한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左)과 아돌프 히틀러(中)

먼저, 늑대굴(볼프스샨체, Wolfsschanze) 에서 "…catastrophe." 라는 대사가 있은 후에 폭탄이 터진 것은 반은 같고 반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브리핑 도중 폭탄이 터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순간의 정적은 극적 효과를 위해 넣었을 것이다.

폭탄이 터진 후, 현장을 촬영한 사진. 히틀러는 큰 부상 없이 무사했다.

발키리 작전을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떠올렸다는 것- 바그너의 곡을 듣고- 도 극적 장치이다. 실제의 대령은 바그너의 음악을 싫어했고, 정부 전복 계획 또한 대령의 아이디어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또, 영화에서는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히틀러 암살을 두 번 시도하는데, 실제론 먼저 베르히테스가덴(Berchtesgaden)의 히틀러 별장(Berghof)에서도 한 번 시도했었다. 이 첫 시도에서는 괴링(H. Göring)과 히믈러(H. Himmler)가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도를 중단했다. (영화에서는 폰 슈타우펜베르크가 이 곳에 갔을 때 괴링과 히믈러가 모두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 끝 부분의 자막에서는 7월 20일의 암살 시도가 15회의 알려진 암살 시도 중, 마지막 암살 시도라는 내용이 있는데, 학자들에 따르면 히틀러가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한 1920년대부터 약 20여년 간의 그의 정치적 생애 동안, 히틀러를 대상으로 한 총 42회의 암살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각주:4] 가장 마지막의 암살 계획은 알베르트 슈페어(A. Speer)가 독가스를 사용하려던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또 이 부분의 자막에서는 대령의 부인, 니나 폰 슈타우펜베르크(Nina von Stauffenberg)가 아이들과 함께 살아남았으며 2006년에 사망했다는 짤막한 내용이 있다. 히틀러의 슈타우펜베르크 가문을 거의 멸족시킬 정도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대령의 가족은 정말 극적으로 살아남았는데, 그 과정이 궁금한 분이 계시다면 이 글을 참조하시면 되겠다.

이것저것 지적하자면 열거할 것들이 수도 없이 많을테니- 예를 들어, 극 중 히틀러가 살아있다는 방송을 한 후 나오는 음악은 실제 히틀러가 즐겨 사용하던 행진곡인 바덴바일러 행진곡(Badenweiler Marsch)이라든가하는 것들까지- 이쯤 하도록 하자.

* 실제 발키리 작전과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에 대해서는 채승병 님께서 자세한 좋은 글들을 써 주시고 계십니다. 관심있는 분들에게는, 그 글들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글 자막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영화관 자막들이 다 그렇긴 하지만 이것 저것 잘라먹거나 이상한 것들이 한 둘이 아니다. 애시당초 영어로 말하는 독일군 (심지어 히틀러까지도!) 들이 나오는 영화라지만. 하지만, 사실 극장에서의 가독성이나 관객들의 성향을 고려하면 당연한 것이리라.

이상으로, <작전명 발키리>를 본 후의 글을 마치고자 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개봉을 기다려왔던 것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톰 크루즈와 브라이언 싱어라는 이름들 덕분에 더욱 기대했었기 때문일까- 명작이나 대작을 기대했는데 평작이 나타났기 때문일까. 그런 탓인가 이 글의 중간 즈음엔, 10점 만점으로 치자면 6점 정도로 이 영화를 평한 바 있는데, 다시금 생각해 보니 10점 만점에 7점 정도로 고치며 글을 맺을까 한다.

  1. 개봉 첫 날, 전국에서 10만 5천명이 작전명 발키리를 관람하였다고 한다. http://news.joins.com/article/3469288.html?ctg=15 [본문으로]
  2. 영화가 영어권에서 영어로 만들어진 영화이다보니, 슈타우펜베르크의 영어식 발음인 슈타펜버그로 이 영화 관련 텍스트들에서 표기되고 있다. [본문으로]
  3. 유주얼 서스펙트의 각본, 크리스토퍼 맥쿼리Christopher McQuarrie가 다시금 싱어 감독과 함께해 각본을 맡았다. [본문으로]
  4. Will, Berthold, Die 42 Attentate auf Adolf Hitler. Overy, Richard. J., The Dictators.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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